이스라엘 성지 방문기 1~4
- webdriverpcmc
- 8월 7일
- 9분 분량
이스라엘 성지 방문기 1
이스라엘 성지 방문기
(2017년 1월 7일~14일)
인성재
제목: 떠나는 날, 눈이 배웅하다성지 방문을 기대하며 집을 나선 그날하양 눈이 배웅 왔다가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붙잡은 하양 손을 뒤로하고 큰 차를 빌려 타고 토론토를 향해 가다 시라큐스에서 밤을 샜다이른 아침 길을 떠나 눈길을 달려 아름다운 백색으로 빛나는 나이아가라를 보고 피어슨 공항에서 날틀에 몸을 실었다 제목: 첫날은 폭우와 이동 그리고 잔잔한 호숫가를 경험한 날신년 두 번째 주일이 지나고 월요일 현지시간 10시 반쯤 랜딩.Tel Aviv의 밴 구리온 공항에 도착 후 준비해준 택시로 시내를 향해 출발여행사 가이드의 배려로 점심을 사 먹었다.첫 이스라엘 현지 식사는 맛난 샌드위치와 빵 그릇에 담긴 이름 모를 스프였다.오랜 기다림 끝에 모든 그룹원들이 모였고 이스라엘 육본 앞에서 출발.처음 도착한 곳은 폭풍속의 가이사랴(Caesarea) 유적지 –10분 영상을 보고, 반원형 극장, 신전 터, 경기장터 등을 둘러보고 버스에 올라 기절. 로템이란 이름의 유대인 가이드는 역사에 해박하였고 이야기를 잘 이끌어 갔다. 해가 질 무렵 타이베리아의 론 비치 호텔에 도착 후 숙소배정, 전원 모여서 자기소개 후에 저녁 식사를 하고 휴식시간을 가짐. 갈릴리 호숫가에 위치한 호텔은 전망과 음식이 아주 좋았고 호텔 직원들이 친절하였다. 제목: 둘째 날, 갈릴리 호수 주변 유적지를 돌아봄아침 8시, 개별 가이드를 만나서 갈릴리 주변 유적지를 다니기로 함현대 승용차를 타고 출발. 갈릴리 호수 북쪽으로 향하고 가는 길에 많은 바나나 농장과 망고 농장을 지나감. 현지 그리스도인 가이드(마르셀?)와 함께 기독교 유적지를 방문하기로 하고 팔복산(Mount of Beatitudes)이라고 불리는 산상수훈을 기념한 팔복교회에 먼저 도착함. 따스한 호수바람이 밀려와 맑은 공기를 마시게 함. 마태복음 5장 팔복의 말씀들이 정원을 따라 영어로 기록되어 있고 물고기, 떡 등의 모자이크가 정원을 장식하고 있었음. 차를 타고 답가로 옮겨가서 베드로 수위권교회를 방문하고 부활후 제자들과 호숫가에서 조반을 드신 곳, 베드로에게 세 번 질문하셨던 곳을 봄. 호숫가에 하트모양의 반석이 눈에 들어왔음. 예수님과 베드로를 형상화한 동상이 당시를 상상하게 함걸어서 나오는 길에 스페인에서 온 비숍과 그 일행들이 미사를 행하는 것을 보고 헵타페곤으로 걸어감. 오병이어교회라고 알려진 이곳은 첫 급식사화의 장소로 알려지고 있고 교회 안쪽 제단 아래에 유명한 오병이어 모자이크가 있음. 그러나 예배당 바닥에는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곳곳에 있어서 이렇게 밟고 다녀도 되나 싶었음.다시 차로 오는 길에 왼쪽 산 중턱에 옛 교회터를 지나감. 가이드에 의하면 교회가 있던 곳이었다고 전해진다는 것. 현재의 교회들의 모습이 될 수 있다는 인식에 눈에 계속 들어옴답가를 떠나 나훔의 동네라는 가버나움에 들어감. 입장료가 올랐다는 가이드의 탄식을 뒤로하고 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고보 등의 고향이기도한 이곳에 있는 베드로 동상에 대해 이야기를 들음. 가버나움은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을 떠나 전략적 요충지인 이곳으로 옮겨 와 머무셨고 갈릴리 선교의 중심지였던 곳임. 베드로의 집이었던 곳이 교회가 되었고 그리고 후에 점점 더 확장되었다. 마침내 그 터 위에 채플이 생겨 오늘에 이르렀다. 북쪽에는 회당(White Synagogue)이 있던 유적지가 있었고 중간에는 마을과 시장들이 있는 유적지를 둘러보았다. 가버나움은 예수께서 사시던 때에 세금을 징수하던 곳이었고 따라서 로마 군인들이 주둔하였던 곳이었다. 동서의 교통요지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바다를 끼고 있던 곳이라 어부들의 마을이기도 했다. 유적지에는 곳곳에서 물고기를 담아 두고 파는 어물전이 있었고 당시의 집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유적지에서 지붕에 올라 환자를 달아 내릴 수 있었던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가버나움을 나와서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배를 타기 전에 도착한 곳은 Ginosar라는 지역에 있는 Yigal Allon Centre. 이곳에는 약 2,000년 전의 어선을 전시하고 있는 곳으로 예수님 시대에 물속에 잠겼던 배를 발굴 인양해 보관하고 그 과정을 전시한 곳이다. 여행객을 위한 선물 파는 곳과 작은 마트가 있어서 잠시 휴식을 취했고 시간에 맞춰 뒤편 선착장으로 갔다. 우리가 탈 배는 모세라는 이름의 선장이 모는 작은 유람선(Francis Sailing ltd.)이 있었다. 여러 나라의 관광객을 유치하느라 배운 선장의 한국어 실력에 기가 찼고 한국어 찬양에 놀랐다. 스페인에서 온 주교일행을 기다리느라 시간을 썼고 갈릴리 바다 중간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중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주변을 둘러 볼 수 있었다. 갈릴리 북쪽의 옛 마을 유적지로 벳새다로 알려진 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요단강을 건너서 작은 언덕 위에 위치한 벳새다는 어부들의 마을로 알려져 있던 곳으로 현재는 해변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 남겨져 있었다. 그 이유는 갈릴 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시대로부터 유명한 도시로 알려진 벳새다에는 성벽이 둘려져 있는 마을로 비교적 규모가 있던 곳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마을 옆과 뒤로 펼쳐진 낮은 동산이 평화롭게 보였다. 물론 사람은 살고 있지 않지만 한가로이 말 한 마리가 풀을 뜯고 있었다. 조금 늦은 시간이었지만 점심을 먹으러 막달라(Magdala)로 향했다. 제법 크게 보이는 마트가 있었고 주위에 여러 상점이 있는 몰이었다. 여기서 점심으로 현지음식을 먹게 되었다. 바로 옆에 있는 막달라(Magdala) 유적지를 방문하였다. 거기 현대식으로 지은 예배당이 눈에 들었는데 이름은 DUC IN ALTUM으로 기독교, 유대교, 모슬렘 신자들이 예배실과 기도처로 사용할 수 있게 구성되었다. 아름다운 모자이크 장식이 여인들의 공간 좌우에 있는 작은 예배실에 수놓아져 있었고 주 예배실에는 좌우에 열두제자들의 초상과 물위에 뜬 어선 모양의 강단이 독특하게 배치되어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하엔 유대인을 위한 기도처가 있었는데 놀랍게도 멋진 성화가 그려져 있었다. 전체적으로 이 건물은 신약성서 속의 여인들을 위한, 그리고 오늘 날의 여인들을 기념하는 곳이었다. 나오면서 막달라 유적지에서 의미있는 회당 유적지를 둘러보았고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의 최후가 어떠했는지 마지막 장면을 연상할 수 있었다. 타이베리아를 지나 갈릴리 호수의 남서쪽 아래로 흐르는 요단을 따라 Yardenit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곳은 요단강물로 침례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각국의 언어로 마가복음 1장 9-11절 말씀이 타일로 된 장식에 새겨져 있었다. 흐르는 요단강물을 보면서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직접 몸을 물에 잠겨 침례를 받을 수 있는 곳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라고 한다. <계속>
이스라엘 성지 방문기2
이곳에서 다시 요단강을 건너서 마을을 지나 갈릴리 동쪽을 맡고 있는 골란고원을 향했다. 가는 길에는 철책이 보였고 오른쪽에는 깊은 계곡이 이어져 있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계곡 건너편은 요르단 왕국이고 전에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이 골란고원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전쟁의 상처를 안은 곳을 지나고 있었다. 철책에 지뢰밭이니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경고가 부착되어 있었다. 오래전 전쟁의 상흔인 셈이다. 골란고원의 어느 곳에서 갈릴리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곳에서는 멀리 헤르몬 산의 만년설을 볼 수 있었고 건너편 타이베리아가 눈에 들어왔다. 바람이 무척 세게 부는 시각이었는지 갈릴리 호수에는 바람이 지나는 자욱이 가득했다. 일몰의 광경과 갈릴리 호수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이곳은 정말 추천할 만한 곳이라 생각한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사진을 찍고 눈에 갈릴리 이곳저곳을 담아 두고 작은 선물을 사서 고원을 내려 왔다. 힘들게 운전하면서 우릴 안전하게 데려다준 가이드에게 감사를 표하고 숙소에서 저녁을 해결하였다. 너무 돌아다녀서인지 꿀잠을 자는 동안 날이 밝았다.
제목: 셋째 날, 가자 예루살렘으로!
다음 날 묵상을 마치고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호숫가에 펼쳐진 일출의 광경은 어제의 피곤을 잊게 하였다. 짐을 챙겨 버스에 옮겨 실은 다음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버스는 갈릴리 남서쪽, 어제 우리가 방문했던 요단강의 침례장소를 들렀다. 미리 부탁한 몇몇 사람들의 침례를 위해 정호영 목사님이 수고하셨다. 첨에 부탁했던 이들은 두 명, 그런데 갑자기 여덟 명으로 늘어났고 그 후 네 명의 지원자(?)가 더 나타났다. 침례11명 세례1명. 바지가 요단강물에 다 젖어드는 줄 모르고 침례를 행한 정 목사님은 감동을 더했다. 마치 세례요한이 된 것 같았다.
가이드의 눈총에 서둘러 버스에 몸을 실고 벳세안(Bet She’an)이라는 고대도시 유적지를 방문하였다. 이곳에서 극장, 회당터, 시장과 메인 거리를 둘러보고 예루살렘을 향해 갔다. 남쪽을 향한 버스는 동편 요단강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고 광야지역을 지나 마침내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되었다.
Mount Zion Hotel이라는 숙소에 짐을 푼 우리는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고 오후 세시쯤 단독으로 예루살렘 근처 감람산 겟세마네를 향했다. 구 예루살렘을 돌아서 여러 성문을 지나고 예수께서 지나셨던 계곡 아랫길(마지막 길이라고 명명된 길)을 따라 내려갔다가 압살롬의 무덤을 지나 언덕 위로 올라갔다.
거기 겟세마네교회가 길가에 크게 보인다. 옆길로 돌아들어가는 문에는 순례자들이 줄지어 있었고 안쪽 프란시스코 수도회에 기증된 이곳 예배당에는 예수께서 기도하셨던 바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화려하게 장식된 성당의 모습에서는 별 감흥이 없었다. 다만 이곳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던 주님을 생각하고 거기 오래 머물고 싶었다. 동산에 심겨진 올리브 나무들이 있는 정원을 지나 밖으로 나오는 동안 이곳저곳에 보이는 반질반질한 바위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체 어느 바위에서 기도하셨을까? 2천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궁금해진 나의 무감각에 놀라며 겟세마네 교회를 떠났다.
길 아래로 내려가는 곳에는 마리아 무덤교회가 있고 바로 옆에는 겟세마네 석굴이 있었다. 이 석굴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오실 때 들러 기도하시고 만찬을 하신 장소로 알려져 있었다. 작은 굴 안에는 포근한 느낌의 제단이 둘러있었고 수도사가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잠시 머물러 보고는 마리아 무덤교회로 내려갔다. 상당히 많은 계단을 내려가 성소에 이르렀을 때 그곳은 온갖 종류의 촛불이 어지럽게 달려 있었고 마리아를 두었던 곳이 제단이 되어 그곳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초를 사서 켜기도 하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수도사로 보이는 남자들이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 같았고 때마다 촛불의 연료를 보충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이곳의 여러 기념교회들은 5시 혹은 5시 반정도에 문을 닫는다. 우리는 서둘러 눈물교회를 향했다. 올리브 산을 오르는 길에서 맞은편에 보이는 바위 돔 사원(Dome of Rock)과 예루살렘 성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마침 눈물교회의 입구는 아직 열려져 있었다. 정원을 지나 건물로 들어가는 데 관리를 맡고 있던 사람이 문을 잠그고 있었다. 사정을 하여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루살렘을 보며 우시던 예수님을 기억하였다. 잠시 기도를 드린후에 밖에 있는 전망대로 향했고 해지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기다려준 그 관리인과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베들레헴 출신 그리스도인이었고 이름은 나달(Nadal)이었다. 자신이 암에 걸려있다고 기도를 부탁했고 우리는 그에게 손을 얹고 기도를 하고 계속 기도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우릴 그곳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였고 그를 만나게 된 것은 주님의 은혜였다. 포옹을 하고 그를 떠나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미 해는 지고 어둠이 내린 예루살렘의 거리는 좁고 복잡하였다. 하지만 둥근 달이 우리의 길을 비춰주고 있었고 ‘고난의 길(Via Dolorosa)’을 살짝 지나서 복잡한 구 예루살렘을 가로질러 다윗의 탑 광장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맛있는 현지 음식을 사먹고 감탄에 빠져 다음날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문을 지나 숙소를 향해 걸었다. 꽤 긴 시간 동안 이동하며 또한 걸어 다녔기에 그날 밤의 단잠은 다음 날 아침의 비극(?)의 원인이 되었다.
<계속>
이스라엘 성지 방문기3
제목 넷째 날: 늦장 출발과 구 예루살렘 순례
아침 8시까지 모이라는 가이드의 말에 6시 기상 묵상하고 제공해주는 아침을 먹고 내려가 보니 이미 시간이 거의 다 되었던 터라 부랴부랴 승강기에 몸을 싣고 가는데 느릿한 승강기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나니 버스는 이미 출발~ 가이드에게 전화를 걸어서 중간에 만나기로 하고 택시를 타고 만날 장소로 가니 아무도 없던 황당한 시간. 그렇게 반시간 정도를 기다려 일행을 만나고 본격적으로 성안으로 지나가게 되었다. 우리가 들어간 문은 시온문(Zion Gate).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곳은 아르메니안 구역. 구 예루살렘은 네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유대인지역, 아르메니안 지역, 이슬람지역 그리고 기독교 지역이다. 각각은 자신들만의 성지가 있다고 한다. 아르메니안 지역에는 야고보교회가 있고 기독교지역에는 성묘교회, 유대인지역에는 통곡의 벽, 이슬람지역에는 황금 돔 사원과 알-악사사원이다. 유대인 지역을 지나면서 중심된 회당(Beit Yaakov Synagogue) 앞 광장에서 잠시 회당 옆에 있는 모스크에 대한 역사 이야기를 듣고 통곡의 벽 쪽으로 향해 내려갔다.
구 예루살렘은 세 개 3대 종교의 성지이면서 동시에 엄청난 갈등의 본산이기도 하다. 현재 유대인 구역에서 통곡의 벽으로 가는 길에는 새로 지어질 성전에 놓일 순금 등대가 특수한 장치를 한 크리스털 케이지 안에 전시되어 있다. 유대인들은 언젠가 현재의 황금 돔 사원자리에 새 성전을 지을 계획이고 이를 저지하려고 경계가 강화된 이슬람의 성지는 방문하기 까다롭게 되었다고 한다.
통곡의 벽에는 남녀가 유별하다. 성전의 서쪽벽인 통곡의 벽에서 많은 순례자들은 기도를 한다. 하지만 남녀가 같이 있을 수 없기에 남자는 북쪽, 여자는 남쪽 광장을 사용한다. 북쪽에 있는 광장에는 성전과 더 가까이 있는 굴이 있고 그 안에서 기도를 하거나 토라를 읽기도 한다.안쪽에 있는 공간에는 도서관처럼 토라나 이를 해석하기 위한 미쉬나 등을 찾아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전에 보았던 장소와 다르게 되어 있는 것을 보니 새로웠다.
성전이 있던 곳을 우측으로 하고 주요 시장도로를 지나서 고난의 길에 다다랐다. 고난의 길 3-4번 포인트가 있는 곳에서 설명을 듣고 안으로 들어가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 처음 쓰러지신 곳과 슬퍼하는 마리아를 만난 곳이다. 상점을 지나가면 쓰러지신 곳이 지하에 표시되어 있고 길을 따라 지나가면 마리아를 만났던 곳을 기념한 교회로 이어진다. (성탄절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성탄장식을 볼 수 있었다.) 5번부터 9번까지의 고난의 길 여정에는 곳곳마다 표시가 있고 담긴 이야기들이 있었고 상점들이 줄지어 있다. 그 길은 성묘교회로 이어지는 길로서 언덕을 향하고 있고 성묘교회 입구로 가는 길에는 콥틱 정교회의 수도사들이 거주하고 수도하는 곳을 지나 교회 입구를 향해 아래로 내려가게 되어 있다. 입구의 광장에서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갈보리 언덕과 십자가가 세워졌던 곳 시체를 두었던 곳 매장한 곳 등을 둘러보게 되었다, 이곳은 순례자들이 매우 많은 곳으로 특히 시체를 안치했던 곳에는 긴 줄을 서서 기다리며 순례를 해야 하는 곳이다. 특이하게도 성묘교회의 입구를 관장하는 사람은 두 무슬림 가족이라고 한다. 그들이 열쇠를 가지고 아침에 문을 열고 저녁에 문을 닫고 잠근다고 한다. 성묘교회는 여러 종파가 나누어 관리하고 있다. 로마천주교회, 그리스 정교회, 콥틱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아르메니안 정교회, 에티오피아 정교회 등이다.
성묘교회를 지나 작은 광장에서 선물을 구매하고 옆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사먹고 길을 따라 다윗의 탑을 지나 어제 약속했던 식당에서 인사를 나누고 다시 자파 게이트를 지나 버스에 몸을 실고 베들레헴으로 향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이동하는데 밀려오는 졸음에 잠시 깜빡하는 사이 베들레헴으로 들어왔고 유대인 가이드와 잠시 작별하게 되었다. 이곳은 팔레스타인 지역이라 유대인의 출입과 활동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다. 때문에 현지 가이드가 우리들의 안내를 맡게 되었다.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예수를 기념하기위한 교회(예수탄생교회 Church of Nativity)가 광장을 지나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단체사진을 찍고 인화하여 파는 사진기사의 요청대로 교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겸손의 문이라는 교회의 입구를 허리를 숙이고 들어가니 공사가 한창인데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이곳 역시 세 교회-로마천주교회, 그리스 정교회, 그리고 아르메니아 정교회가 한 장소를 나누어 관리하고 있었다. 예수 나신 곳을 보기 위해서는 오른쪽 측랑을 지나 좁은 계단을 지나 내려가야 했다. 무척이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내려가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나신 곳에는 14각형 별모양의 표지가 있고 이를 기념하여 가이드가 사진을 찍어주었다.
나오는 쪽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들어갔던 반대편 측랑으로 나오고 그 곳에서 오래전 바닥이었던 모자이크로 된 바닥의 일부를 보았다. 이어지는 통로를 통해 이웃한 성 캐더린 성당교회로 이동하여 다시 지하로 내려가면 여러 방이 있는 굴로 이어지고 그곳에는 여러 개의 작은 예배처소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히브리어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성 제롬이 머물었던 서재와 그를 기념하는 제단이 있다. 사실 두 곳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데 평상시에는 닫혀져 있고, 공식적인 전례 때에만 열어서 사용한다고 한다. 잠시 둘러본 그 곳에서 내려왔던 계단을 다시 올라 바깥으로 나오면 성 제롬의 동상이 중앙에 위치한 정원을 지나게 되고 다시 몇 가지 기념적인 성화와 조각상이 있는 통로를 지나 예수탄생교회 앞 광장으로 나왔다.
버스를 향하는 길에서 기념품을 팔려고 하는 이들을 만났고 버스를 타고 유대인 가이드가 있는 기념품 가게를 들렀다. 올리브나무를 이용해서 만든 수많은 소품들과 각종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는 기념품들 사이에서 십자가와 마그넷을 몇 개 사들고 다시 차에 올랐다. 멀리 예수탄생교회가 보이고 산 아래로 내려가면서 이곳이 정겹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세상 모든 죄인들을 품으시려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예수께서 나신 곳. 유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돌아오는 길에 먼 산들과 광야 같은 곳, 건조한 곳을 지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중 멋진 하늘과 구름을 보았다. 마치 하나님의 손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고 펼쳐진 것 같은 아름다운 정경이었다. 숙소인 시온산호텔로 돌아와 우리는 이스라엘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준비하고 산책을 나갔다. 숙소 근처 옛 기차역을 리모델링하여 벼룩시장으로 만든 곳이다. 맛난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기념품을 사고, 조금은 찬바람을 맞으며 거리를 둘러 돌아와 잠이 든다. 긴 하루 긴여정이었다.
<계속~~>
이스라엘 성지 방문기 4
다섯째 날: 집으로 가는 날
고단한 몸이 침대의 폭신함에 빠져 아침을 맞았다. 미리 챙겨둔 가방을 올리고 아침을 먹는다.헤어지는 것이 아쉬웠는지 함께 다녔던 이들이 반가워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몇몇 이들은 기념사진을 찍으며, 연락처를 주고받는다. 버스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올라 예루살렘 성을 돌아 텔아비브를 향하는 1번 고속도로를 타고 산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벤구리온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마쳤다. 처음 출발할 때 겪었던 짧은 모험 같은 출발을 기억하고 감사하면서, 한 주간 못 본 가족들과 교회를 생각하며 성지를 뒤로하고 길을 떠난다.
무사히, 별 탈 없이, 모든 것이 순조롭게 토론토 공항을 거쳐 집 근처 라 구아디아 공항으로, 그리고 여전히 흰 눈이 반겨주는 뉴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각각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집이 최고다. 본향을 그리워하는 나그네의 삶을 생각해보았다.
이스라엘에서 지나다녔던 곳들
-갈릴리지역
팔복산
답가
베드로 수위권 교회
산위에 남은 교회터
일곱 우물(Hepta-Pegon)지역의 오병이어교회(Church of Heptapegon)
가버나움
베드로동상
베드로 집과 교회
화이트 시너고그
옥상으로 계단이 있는 집 구조
이갈 알론 박물관, Ginosar, Israel
갈릴리 유람선 탑승
벳새다
막달라
Duc In Altum
막달라 회당 유적
골란고원
갈릴리전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
요단강가
침례장소
벧세안 유적
-예루살렘지역
겟세마네
눈물교회
마리아의 무덤교회
유대인들의 무덤
감람산
고난의 길(1-5)
네 개의 지역
시온문
유대인 회당
서쪽벽- 통곡의 벽
고난의 길(3-14)
성묘교회
자파게이트
베들레헴
예수탄생교회
성 캐더린교회
-사해와 광야지역
여리고
마사다
쿰란
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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