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가을학기 '피어그룹' 참고 글
최종 수정일: 10시간 전
*심화과정 피어그룹을 시작하는데 있어서 피어그룹이 무엇인지, 어떤 자세가 도움이 될지를 다시 생각해 보는 글을 준비했습니다. 첫째는 성경말씀, 둘째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글을 소개합니다. 18세기-19세기초에 사시던 분이 유배지에서 제자에게 쓰신 편지 내용을 주로 다룬 것입니다. 오래된 글이지만 그 내용이 피어그룹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 나눕니다. 이해하기 쉽도록 현대어로 그 분의 글을 다룬 것을 나눕니다.
먼저 요약본과 그리고 유튜브의 녹취록을 나눕니다. 유튜브 "정약용의 서재" [칭찬 대신 '이렇게' 말하라, 평생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 전체 녹취록 내용을 이 문서의 5쪽부터 첨부했습니다. 녹취록을 읽는 대신 '유튜브' 에 들어가셔서 직접 들으셔도 됩니다. (20분정도의 내용이) 저에게는 매우 유익했습니다. 적극적으로 추천합니다.
[1] 사무엘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2] "목민심서"다산 정약용 (1762년 8월 5일~1836년 4월 7일)
칭찬보다 깊은 말— 사람을 알아주는 힘: [요약] "말이 달라지면 관계가 달라진다. 관계가 달라지면 삶이 달라진다." [다산 정약용]
사람들은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칭찬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하셨습니다.”
“대단합니다.”
“정말 훌륭합니다.”
물론 칭찬은 필요합니다. 칭찬은 사람을 격려하고 그 순간을 밝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칭찬보다 더 깊이 사람의 마음에 남는 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산 정약용의 삶과 사상을 생각하면 중요한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다산은 오랜 유배생활을 통해 사람과 세상을 깊이 관찰했습니다. 특히 『목민심서』에서 그는 사람을 다스리는 기술보다 먼저 백성의 형편과 고통을 살피는 마음을 강조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말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아니라 '사람을 얼마나 깊이 바라보느냐' 입니다. 오늘의 핵심은 한 문장입니다. “보는 것이 먼저이고, 말은 그 다음이다.”
1. 결과를 칭찬하기보다 수고를 알아주라 (결과와 과정)
칭찬은 대부분 결과를 향합니다. “잘했습니다.” “성공하셨네요.” “대단한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속에 오래 남는 말은 조금 다릅니다.
“여기까지 오는 것이 쉽지 않으셨겠어요.” “그동안 얼마나 애쓰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오셨군요.”
사람은 자신의 성과가 인정받으면 기쁘지만, 자신의 수고가 알아져 있을 때 감동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의 결과를 봅니다. 그러나 결과 뒤에는 아무도 보지 못한 시간이 있습니다. 잠을 줄여가며 일했던 시간, 혼자 고민했던 시간, 포기하고 싶었지만 견뎌낸 시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묵묵히 책임졌던 시간이 있습니다.
그래서 “잘했어요”라는 말보다 때로는 “많이 애쓰셨지요.” 라는 한마디가 더 깊이 가슴에 닿습니다.
적용 [유튜브에 없는 내용] 자녀에게도 “100점 받았네. 잘했다”라고 만 말하기보다, “그동안 꾸준히 공부하는 것을 내가 보았어.” 라고 말해 보십시오.
동료에게도 “행사가 정말 잘됐습니다.” 라고 만 하기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준비하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해 보십시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알아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 사람을 높이기보다 곁에 앉아주라
칭찬은 사람을 높여 줍니다. 그러나 때로 사람에게 더 필요한 것은 높은 자리가 아니라 함께 있어 주는 사람입니다.
“대단하시네요.” 라는 말도 좋지만, “많이 힘드셨겠어요.” 라는 말이 더 필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칭찬은 때로 평가하는 사람과 평가받는 사람의 관계를 만듭니다. 그러나 공감은 다릅니다.
공감은 상대방의 곁에 앉습니다. “나는 당신의 형편을 봅니다.” “당신이 지고 있는 무게를 압니다.” “당신 혼자 감당하고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라고 말해 주는 것입니다. 사람은 높임을 받을 때 기쁘지만, 누군가 자기 곁에 앉아 있다고 느낄 때 외롭지 않습니다.
적용 [유튜브에 없는 내용] 누군가 어려움을 이야기할 때 너무 빨리 해결책을 주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되잖아요.” 라고 말하기 전에, “그동안 많이 힘드셨겠네요.” 라고 말해 보십시오. 때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답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알아주는 사람 한 명입니다.
3. 좋은 말을 찾기 전에 사람을 먼저 보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관찰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가?” “무엇을 혼자 감당하고 있는가?” “이 사람이 말하지 않고 있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오랫동안 지켜온 좋은 성품은 무엇인가?” 이것을 먼저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눈이 먼저 닿아야 말이 닿는다.”
사람을 자세히 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말이 있습니다. “멋집니다.” “최고입니다.” “대단합니다.” 누구에게나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힘든 상황에서도 사람들에게 화내지 않고 끝까지 기다려 주시는 모습을 오래 보았습니다.” 라는 말은 그 사람을 오랫동안 보지 않고 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사람은 그 말을 들으며 생각합니다.
“이 사람이 나를 정말 보고 있었구나.” 그 순간 마음이 열립니다.
4. 칭찬보다 더 깊은 인정은 ‘질문’이다
사람을 인정하는 매우 깊은 방법 가운데 하나는 진심으로 묻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우셨습니까?” “제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은 칭찬이 아닙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사람을 매우 깊이 인정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칭찬은 내가 상대에게 무엇인가를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질문은 내가 상대에게서 무엇인가를 받으려는 것입니다. 질문한다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당신 안에는 내가 배울 만한 것이 있습니다.” “당신의 경험에는 가치가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나에게 필요합니다.”
사람은 칭찬받을 때도 기쁘지만,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고 느낄 때 더 깊은 의미를 경험합니다.
5. 잘 말하는 사람보다 잘 듣는 사람이 되라
우리는 대화를 잘하는 사람을 흔히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좋은 관계를 만드는 사람은 오히려 잘 듣는 사람입니다.
질문을 했다면 끝까지 들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말하는 중간에 “나도 그런 적 있어요.”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로 가져가지 않는 것입니다. 곧바로 충고하지 않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는 것입니다.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입을 다무는 일이 아닙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내가 시간을 들여 들을 만큼 가치가 있습니다.” 라고 표현하는 행동입니다.
그래서 경청 자체가 깊은 인정입니다.
6. 모든 것의 출발은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이 모든 것을 대화기술로만 배워서는 안 됩니다. “수고하셨다고 말해야지.” “질문을 하나 해야지.” “공감하는 척해야지.”
이렇게 기술로 접근하면 오히려 어색해 집니다. 사람은 진심과 흉내를 생각보다 잘 구별합니다. 먼저 마음이 바뀌어야 합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먼저입니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면 그 사람을 자세히 보게 됩니다. 자세히 보면 그 사람의 수고가 보입니다.
수고가 보이면 말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바뀌면 눈이 바뀝니다. 눈이 바뀌면 말이 바뀝니다. 말이 바뀌면 관계가 바뀝니다.
[마무리] 칭찬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칭찬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칭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결과만 보지 말고 그 뒤의 수고를 보십시오. 사람을 평가하기보다 그 사람이 서 있는 자리를 보십시오. 내가 말하려 하기보다 그 사람에게 물으십시오. 그리고 귀를 기울이십시오. 우리가 평생 기억하는 사람은 반드시 말을 화려하게 했던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힘들 때 내 수고를 알아준 사람, 내가 외로울 때 내 형편을 보아준 사람, 아무도 내 생각을 묻지 않을 때 내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말해 준 사람입니다.
다산의 정신을 오늘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을 다듬기 전에 사람을 보는 눈을 깊게 하라.” 말의 품격은 어휘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사람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느냐 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때로 사람의 평생에 남는 말은 "대단합니다”라는 찬사가 아니라, “그동안 많이 애쓰셨지요. 저는 알고 있습니다.” 라는 짧은 한마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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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1762년 8월 5일~1836년 4월 7일)
'목민심서' [칭찬 대신 '이렇게' 말하라, 평생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
유튜브 "정약용의 서재"
** 이글(녹취록)을 읽는 대신 '유튜브' 에 들어가셔서 들으셔도 됩니다. (20분정도의 내용)
그대들은 누군가에게 칭찬을 건넨 적 있는가? 정성껏 골라 전한 말이었는데 상대의 표정이 생각만큼 밝지 않았던 적은 없는가? 나는 유배지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며 사람을 관찰했다. 칭찬을 자주 건네는 이가 꼭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말을 아끼는 이가 더 깊고 오래 가는 인연을 곁에 두었다. 칭찬은 귀에는 닿지만 마음에는 닿지 않을 때가 있다. 사람의 평생을 움직이는 것은 찬사가 아니라 다른 종류의 한마디였다. 오늘은 그 한 마디가 무엇인지 그리고 왜 그 말이 칭찬보다 깊이 사람의 가슴에 남는지를 전하려 한다.
사람들은 칭찬이 관계를 잇는다고 여긴다. 좋은 말을 건네면 상대의 마음이 열리고 그 열린 마음이 오래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나 역시 젊은 시절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말을 잘 고르면 사람을 얻을 수 있다고 여겼다. 좋은 말이 좋은 관계를 만든다고 믿었다. 그러나 유배지에서 나는 다른 것을 보았다. 칭찬을 자주 듣는 사람이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칭찬을 자주 건네는 사람이 반드시 신뢰를 얻는 것도 아니었다. 찬사는 그 순간을 밝게 만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밝음은 흐려졌다. 상대의 마음속에 남는 것이 없었다.
왜 그런가? 칭찬은 대부분 결과를 향한다. 잘했다. 훌륭하다. 대단하다.이 말들은 모두 무언가를 해낸 뒤에 따라붙는 말이다. 그러니 칭찬을 받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이루어 낸 것이 인정받았다고 느낀다. 사람은 자신의 성과가 인정받을 때 기쁘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가 알아져야 감동한다. 기쁨은 그 자리에서 사라지지만 감동은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나는 유배지에서 그 차이를 몸으로 겪었다. 멀리서 안부를 전해오는 이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어떤 이는 나의 학문을 칭찬했고 어떤 이는 내가 그 외진 곳에서도 그를 놓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주었다. 칭찬을 건넨 이의 말은 읽는 순간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나를 알아준 이의 말은 한참이 지나도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칭찬과 인정은 다르다. 칭찬은 상대를 향해 쏘는 말이고 인정은 상대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해 주는 눈길이다. 사람들은 칭찬으로 관계를 이으려 한다. 그러나 칭찬은 관계를 이어주지 않는다. 그것은 잠시 관계를 밝혀줄 뿐이다. 불꽃이 꺼지면 주인은 다시 어두워진다.
사람의 마음을 오래 붙들어 두는 것은 찬사의 양이 아니라 그 사람을 얼마나 깊이 보았는가 하는 눈의 깊이에서 비롯된다. 나는 그것을 늦게 알았다. 그리고 알고 난 뒤에는 말을 더 아끼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홀로 견뎌온 시간이 있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애쓴 날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은 순간들. 그 시간은 결과가 나오고 나면 보이지 않게 된다. 결과만 남고 과정은 묻힌다. 사람들은 드러난 것에 반응한다. 잘 차려진 밥상을 보고 맛있다 말하지. 그것을 준비한이가 새벽부터 일어나 얼마나 정성을 들렸는지는 묻지 않는다. 완성된 글을 보고 훌륭하다 말하지. 그 글을 쓰는 동안 얼마나 많은 밤을...
나는 유배지에서 홀로 글을 쓰던 시절을 떠올린다. 책이 완성되었을 때 칭찬을 건네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을 진정으로 움직인 것은 완성된 책을 향한 찬사가 아니었다. 어느 날 제자 하나가 편지를 보내왔다. 그는 이렇게 썼다. 스승께서 이 험한 곳에서도 붓을 놓지 않으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 하루하루가 얼마나 고대되셨을지를 생각하면 저는 그저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나는 그 편지를 오래 손에 쥐고 있었다. 그것은 나의 학문을 칭찬하는 말이 아니었다. 나의 수고를 알아주는 말이었다. 그 차이가 내 가슴을 울렸다. 사람은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원하는 인정은 잘했다는 평가가 아니다. 내가 얼마나 애썼는지 안다는 눈길이다. 결과를 향한 찬사는 상대를 높인다. 그러나 수고를 알아주는 말은 상대의 곁에 앉는다. 높이는 것과 곁에 앉는 것은 다르다. 사람은 높임을 받을 때 기쁘지만 곁에 누군가 앉을 때 비로소 외롭지 않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그 말은 어떻게 건네는가? 거창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거창하면 닿지 않는다. 담백하게 작은 것을 짚어 주면 된다. 오늘 여기까지 오는 길이 쉽지 않으셨겠다.이 일을 맡아 오래 버티셨다는 것을 안다. 말하지 않아도 얼마나 애쓰셨는지 보였다. 이런 말들이다.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이 말들은 상대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처음으로 비로서 꺼내 놓는다. 사람은 자신의 수고가 누군가의 눈에 닿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그 사람을 오래 기억하게 되고, 그것은 찬사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알아줌으로 만들어진다. 나는 그것을 배우는데 오랜 세월이 걸렸다. 결과를 칭찬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과정을 알아보는 것은 상대를 오래 그리고 깊이 들여다보아야 가능하다.
그 눈길이 먼저다. 말은 그 다음이다. 칭찬에는 종종 과장이 섞인다. 대단하다. 훌륭하다. 최고다.이 말들은 상대를 기쁘게 하려는 마음에서 나오지만 듣는 이는 그것이 과장임을 안다. 사람은 자신을 가장 잘 안다. 자신이 정말 대단한 지 훌륭한 지를 남보다 먼저 그리고 더 정확하게 안다. 그러니 과장된 찬사 앞에서 속으로는 고개를 숙여 받아들이되 온전히 믿지는 않는다. 그렇게 칭찬은 공중에 떠돌다 사라진다. 나는 유배지에서 관리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 가운데는 말을 잘하는 이들이 있었다. 누구를 만나든 좋은 말을 능숙하게 건넸다. 처음에는 그 말이 듣기 좋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알아챘다. 그 말들이 자신에게만 건네는 것이 아님을 누구에게나 똑같이 건네는 말임을 그때부터 그 말은 힘을 잃었다. 칭찬은 많아질수록 가벼워진다.
반면 나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도 보았다. 말이 많지 않은 이었다. 그러나 그가 건네는 말은 달랐다. 그는 상대를 오래 바라보았다. 그리고 상대의 처지와 형편을 먼저 헤아렸다. 말을 건네기 전에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가만히 살폈다. 그가 건네는 말은 이런 것이었다. 요즘 많이 고단하신 것 같다. 이런 자리에서도 흐트러지지 않으시는 것을 보니 참으로 단단한 분이라는 것을 알겠다.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말은 상대의 현재를 비추었다. 지금 이 사람이 어떤 무게를 지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는 신호였다. 사람은 자신의 처지가 남에게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될 때 그 사람 앞에서 마음을 연다. 내 형편을 아는 사람, 내 무게를 알아보는 사람 앞에서는 굳이 꾸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꾸밈이 사라지면 진심이 남는다. 진심이 오가는 자리에서 관계는 깊어진다.
과장은 상대를 높이는 척하지만 실은 상대를 제대로 보지 않은 것이다. 담백한 인정은 상대를 높이지 않는다. 다만 상대가 있는 자리를 그대로 바라본다. 그 바라봄이 찬사보다 깊다. 그 바라봄이 찬사보다 오래 남는다. 나는 그것을 깨달은 뒤로 말을 건네기 전에 먼저 상대를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이 사람은 지금 어디에서 있는가? 어떤 무게를 지고 있는가? 무엇을 혼자 감당하고 있는가? 그것을 먼저 본 뒤에 입을 열었다. 그러자 말이 달라졌다. 그리고 사람이 달라졌다. 존재를 비추는 말은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를 향한 눈길의 깊이 나온다. 눈이 먼저 닿아야 말이 닿는다.
칭찬에는 보이지 않는 위계가 있다. 칭찬을 건네는 사람은 평가하는 자리에 있다. 칭찬을 받는 사람은 평가받는 자리에 선다. 말은 좋지만 구조는 그렇지 않다. 잘했다고 말하는 순간 그 말을 건네는 이는 이미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훌륭하다고 말하는 순간 그 말을 받는 이는 심사를 통과한 사람이 된다. 사람은이것을 느낀다.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몸으로 마음으로 느낀다. 그래서 칭찬을 받으면서도 어딘가 불편한 감각이 남을 때가 있다.
나는 유배지에서 그 감각을 몸으로 겪었다. 먼 곳에서 찾아온 이들이 더러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 어떤 이는 내 처지를 보며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이런 곳에서도 학문을 놓지 않으시다니 하고 말했다. 듣는 순간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돌아간 후에 마음속에 남는 것이 없었다. 오히려 묘한 씁쓸함이 자리를 차지했다. 왜 그랬는가? 그 말 속에는 보이지 않는 전제가 있었다. 이런 곳에 있는 사람 치고는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나를 칭찬하는 말이었으나 동시에 나의 처지를 가엽게 여기는 눈길이 담겨 있었다. 칭찬은 건넸으나 그는 나보다 높은 자리에서 있었다. 나는 그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느낌은 말보다 오래 남았다. 사람은 영리하다. 상대가 나를 진심으로 보는지 아니면 나를 가늠하며 말을 건네는지를 오래지 않아 알아챈다. 칭찬이 위에서 내려오는 말일 때 받는 이는 기쁨보다 먼저 거리를 느낀다. 그 거리가 쌓이면 관계는 깊어지지 않는다. 말은 오가나 마음은 닿지 않은 것이다.
그것이 칭찬의 한계였다. 그리고 나는 그 한계를 넘는 말이 따로 있다는 것을 오랜 관찰 끝에 알게 되었다. 나는 유배지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잃었다. 그 가운데 내가 평생 잊지 못한 이들이 있다. 그들은 나를 칭찬한 이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내게 물었다. 선생께서는 이 일을 어떻게 보십니까? 제가 미쳐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가르쳐 주십시오. 선생의 눈에는 이것이 어떻게 보이는지 듣고
싶습니다.이 물음들은 나를 칭찬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를 깊이 높였다. 칭찬은 나의 과거를 향했지만 이 물음들은 나의 현재를 향했다.
나의 생각이 나의 판단이 나의 시선이 지금이 사람에게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사람은 필요한 존재가 될 때 살아 있음을 느낀다. 칭찬을 받을 때가 아니라 자신의 지혜가 누군가에게 쓰일 때 비로소 자신이 이 세상에 있어야 할 이유를 느낀다. 나는 그것을 유배지에서 절실히 알았다. 유배지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다. 벼슬도 없었고 권세도 없었고 내 말에 귀 기울이는 이도 많지 않았다. 그런 시절에 누군가 나를 찾아와 진심으로 물었다. 선생은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그 물음 앞에서 오랫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그것이 나를 얼마나 깊이 흔들었는지 지금도 그날의 감각이 또렷하다.
묻는다는 것은 상대를 인정하는 가장 깊은 방식이다. 칭찬은 내가 상대에게 무언가를 준다. 그러나 물음은 내가 상대에게서 무언가를 받으려 한다. 받으려 한다는 것은 상대 안에 받을 만한 것이 있다고 믿는다는 뜻이다. 그 믿음이 상대의 가슴에 닿는다. 그대들은 주변의 사람에게 물어본 적 있는가? 그 사람의 생각이, 그 사람의 경험이, 그 사람의 눈길이 진심으로 궁금하여 귀를 기울인 적 있는가? 물음은 기술이 아니다. 상대를 향한 진심 어린 경외에서 나온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이 아는 것을 품고 있다. 자신만이 겪어온 것을 품고 있다.
그것을 알아 달라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알아주기를 기다린다. 그 기다림에 응답하는 것이 물음이다. 평가하는 자의 자리를 내려놓고 배우려는 자의 자리에 앉는 것. 그것이 칭찬보다 깊고 오래가는 사람을 향한 가장 품격 있는 태도라는 것을 나는 유배의 긴 세월 끝에 깨 달았다.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잘 묻는 사람이 더 오래 곁에 남는다. 찬사를 많이 건네는 사람보다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사람이 더 깊은 자리에 새겨진다. 묻는다는 것은 상대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다. 그 걸음을 내딛는 사람을 사람은 평생 잊지 못한다.
나는 지금까지 세 가지를 말했다. 홀로 견뎌온 수고를 알아주는 말. 상대의 처지와 존재를 가만히 비추어 주는 말. 그리고 상대의 지혜를 진심으로 우러러 묻는 태도. 이 셋은 같은 곳에서 시작된다. 모두 상대를 먼저 본다. 칭찬은 내가 건네고 싶은 말을 먼저 고른다. 그러나 이 세 가지는 다르다. 상대가 무엇을 지고 있는지를 먼저 살피고 상대가 어디에서 있는지를 먼저 헤아리고 상대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먼저 믿는다. 그 뒤 에야 말이 나온다. 순서가 다르다. 그 순서의 차이가 말의 무게를 바꾼다.
나는 유배지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며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았다. 마음은 좋은 말에 움직이지 않았다. 마음은 자신이 보였다고 느낄 때 움직였다. 보인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숨기고 싶었던 고단함이 상대의 눈에 닿았을 때, 내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상대가 알아챘을 때, 내 안에 있는 것을
상대가 먼저 발견해 주었을 때, 사람은 비로소 자신이 보였다고 느낀다. 그 순간 마음이 열린다. 그 순간 관계가 깊어진다. 그 순간 상대가 평생의 사람이 된다.
찬사는 상대의 밖을 향한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안에 있다. 밖을 두드려서는 안이 열리지 않는다. 안을 알아보아야 문이 열린다. 수고를 알아주는 말은 상대에 보이지 않는 시간을 본다. 존재를 비추는 말은 상대의 현재를 있는 그대로 본다. 진심으로 묻는 태도는 상대 안에 있는 깊이를 본다. 이 세가지는 모두 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보지 않고는 건넬 수 없는 말들이다. 그래서 이것은 말의 문제가 아니다. 눈의 문제다. 얼마나 깊이 상대를 들여다 보았는 가의 문제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깊이 보는 사람은 드물다. 드물기 때문에 그 눈길을 받은 사람은 그것을 평생 잊지 못한다.
나는 유배지에서 그런 눈길을 몇 번 받았다. 그 눈길을 건넨 이들의 이름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들이 내게 건넨 말이 특별히 화려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이 나를 바라보는 방식이 달랐다. 그 방식이 말이 되어 나왔고 그 말이 내 가슴 깊은 곳에 닿았다. 사람의 평생을 움직이는 한 마디는 혀 끝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상대를 향한 깊고 오랜 눈길에서 만들어진다. 보는 것이 먼저다. 말은 그 다음이다. 그리고 그 말은 오래 남는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원리를 아는 것과 실제로 행하는 것은 다르다. 보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알아도 막상 사람 앞에 서면 말이 먼저 나온다. 오래된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나는 유배지에서 스스로를 훈련했다. 말을 줄이고 먼저 보는 연습을 했다. 그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사람을 만나면 무언가를 건네야 한다는 조급함이 있다. 침묵이 불편하여 말로 채우려 한다. 그 말이 칭찬이 되고 그 칭찬이 습관이 된다. 그러나 나는 그 조급함을 내려놓는 연습을 했다.
상대를 만났을 때 먼저 살피는 것.이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헤아리는 것. 그것이 먼저라는 것을 되새겼다. 구체적으로는 이렇게 했다. 상대가 무언가를 이루었을 때 결과를 칭찬하기 전에 과정을 먼저 물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걸리셨습니까? 가장 힘드셨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이 물음은 상대에게 자신의 수고를 스스로 말할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끝까지 들었다. 중간에 끊지 않았다. 내 생각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저 들었다. 듣는 것 자체가 이미 깊은 인정이었다. 상대가 고단해 보일 때는 먼저 그것을 말했다. 요즘 많이 힘드신 것 같다. 무리하지 않으셔도 된다. 그 한마디가 상대의 긴장을 풀었다. 꾸밀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상대와 오래 알고 지낼수록 그 사람이 잘하는 것, 오래 지켜온 것, 남들은 모르는 그 사람만의 결을 알게 된다. 그것을 말로 짚어 주었다. 선생께서는 언제나 사람을 끝까지 기다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저는 그 점을 오래 보아왔습니다. 이런 말은 오래 관찰하지 않으면 건넬 수 없다. 그래서 이 말을 받은 상대는 안다.이 사람이 나를 오래 보아왔다는 것을 그 앎이 마음을 움직인다.
또한 나는 물음을 아끼지 않았다. 상대의 생각이 궁금할 때는 솔직히 물었다.
선생은 이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저는 이 부분이 늘 어렵습니다. 선생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이 물음은 상대를 높이지 않는다. 그러나 상대를 필요한 존재로 만든다. 그 차이가 크다. 높임은 잠깐이지만 필요함은 오래 간다. 한 가지를 더 말하겠다. 이 모든 것은 진심이어야 한다. 수고를 알아주는 척. 존재를 비추는 척. 묻는 척을 하면 상대는 안다. 사람은 진심과 흉내를 구별하는 감각이 있다. 흉내는 오히려 관계를 해친다. 진심 없는 따뜻함은 차가움 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길 때가 있다. 그러니 이것은 기술로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대를 진심으로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먼저 있어야 한다. 그 마음이 있으면 말은 자연히 따라온다. 그 마음이 없으면 아무리 말을 고르고 다듬어도 결국 공허하게 흩어진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말을 바꾸려 하지 말고 먼저 그 마음을 바꾸어라. 마음이 바뀌면 눈이 바뀐다. 눈이 바뀌면 말이 바뀐다. 그리고 말이 바뀌면 사람이 곁에 남는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말을 건넨다. 그 말들이 쌓여 관계가 되고 관계가 쌓여 삶이 된다. 어떤 말을 건네며 살았는가? 그것이 결국 어떤 삶을 살았는 가와 같은 말이다.
나는 유배지에서 긴 세월을 보내며 말의 무게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권세가 있을 때는 몰랐던 것들이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 비로소 보였다. 사람은 권세를 이르면 말도 잃는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생각이었다. 권세는 사람을 모이게 하지만 말의 품격은 사람을 머물게 한다. 권세가 사라져도 곁에 남는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내가 화려할 때 칭찬을 건넨 이들이 아니었다. 내가 초라할 때 나를 깊이 보아준 이들이었다. 내 수고를 알아준 이들이었다. 내 생각을 진심으로 물어준 이들이었다. 그들은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사람을 깊이 보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서 배웠다. 말의 품격은 어휘에서 오지 않는다. 말의 품격은 상대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가 에서 온다.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무엇인가? 상대의 시간을 존중하는 것이다. 상대의 수고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상대의 처지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 안에 내가 모르는 깊이가 있음을 믿는 것이다. 이것이 몸에 배면 말이 달라진다. 말이 달라지면 관계가 달라진다. 관계가 달라지면 삶이 달라진다.
그대들 이여, 칭찬을 거두라는 것이 아니다. 칭찬은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칭찬만으로는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닿지 못한다는 것을 알라.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닿으려면 그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을 보아야 한다. 그 사람이 말하지 않은 것을 알아채야 한다. 그 사람 안에 있는 것을 진심으로 물어야 한다. 그것은 하루 아침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루하루 쌓이면 그 눈길이 깊어지고 그 말이 달라지고 그 사람됨이 달라진다.
나는 유배지에서 그것을 배웠다.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 사람을 보는 눈을 얻었다. 그것이 내가 그 긴 세월에서 얻은 가장 값진 것이었다. 혀끝에 재주는 늙으면 무뎌 진다. 그러나 사람을 깊이 보는 눈은 세월이 쌓일수록 더 밝아진다. 그대들 이여 말을 다듬기 전에 눈을 먼저 깊게 하라. 상대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먼저 키워라. 그 마음에서 나온 한 마디가 찬사 한마디 보다 깊이 사람의 가슴에 남는다. 그리고 그 한마디를 받은 사람은 평생 그대를 잊지 않는다. 말은 짧아도 된다. 다만 그 울림이 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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